5·18민주화운동에서 청소년의 참여 - 1970년대 후반 광주의 민주화운동과 연계하여 -
Teenagers' Participation in the May 18 Democratic Uprising - In connection with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in the late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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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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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에서는 그동안 연구가 부족했던 한국현대사에서 청소년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1970년대 후반 광주의 민주화운동과 5·18민주화운동을 들여다보았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정권의 계속된 탄압으로 민주화운동이 위축된 상황 속에서도 광주의 청소년들은 노동야학에 참여하면서 불합리한 노동 현실을 자각하는 노동자 의식을 배양했고, 양서협동조합 운동으로 만들어진 독서회를 통해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키워갔다.
 1980년 5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주화 시위가 이어졌을 때 광주에서도 5월 14일~16일에 걸쳐 평화로운 민족·민주성회가 열렸고 광주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하지만 5월 18일부터 계엄군의 강경한 진압이 이어졌고 예비 검속으로 인해 대학의 총학생회와 주요 민주화 인사들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970년대 후반 성장하고 있던 광주의 민주화운동 세력과 함께 청소년들이 5·18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5·18민주화운동이 박관현과 같은 주요 지도자들의 부재 속에서도 열흘간 항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은 10대 청소년과 20대의 청년들 때문이었다.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은 20대의 대학생 및 청년들과 함께 항쟁의 주축 세력으로 참여하였다. 10대 청소년의 참여 양상과 희생의 현황은 1970년대 이후 1980년에 이르기까지 광주 민주화운동의 저변 확대를 보여주며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참여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