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최재희와 개인 주체성 담론
Choi Chae-hŭi and His Discourse on Individual Sovereignty in Post-liberation South Korea
- 발행
- 2014 등록이 논문은 발행 시점을 확인하지 못해 원문 등록일을 적었습니다. KCI가 2005~2008년에 옛 논문을 몰아서 올린 탓에, 그 시기 등록분은 발행보다 평균 3~5년 늦습니다. 실제 발행연도는 더 이를 수 있습니다.
- 출처
- 국내 KCI
-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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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키워드
근대성, 근대 주체, 근대성찰, 해방 공간, 최재희, 민족주의, 자유주의, 인격적 개인주의, 인격, 개인, 자주성, 서구 문화, 동아시아 지역 헤게모니, modernity, modern subject, reflection on modernity, post-liberation space and time, Choi Chae-hŭi, nationalism, liberalism, personalist individualism, personhood, individual, sovereignty, the Western culture, regional East-Asian hegemony
초록
근대 시기 서구에서, 집단적 차원에서건, 개인적 차원에서건, 주체성의 문제는 제반 사유와 실천의 핵심적 관심사이다. 이것은 근대 시기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근대 역사 역시 주체 건설의 역사였다. 일제 식민시기, 한국과 한국인들은 식민주의와의 타협과 경쟁 속에서 주체의 해체까지 경험하였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해방 직후 한국인들의 자기 정체성 구성 노력을 파악하고자, 본 논문은 철학자 최재희(1914-1985)의 개인 담론을 살핀다. 최재희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에서 ‘근대 민주주의적 민족 국가’ 건설 노선으로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그것을 인격적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었다. 개인주의는 해방 직후 핵심적 정치 의제로 의식되었던 국가 건설, 또 그것에 목적이었던 국가 그 자체에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으로까지 ‘의심’받고 있었다. 국가주의자와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은 개인주의를 집중적으로 비판・성토하였다. 또한 개인주의 비판은 서구 근대 문명 비판과 근대 성찰과 극복이라는 차원에서도 수행되고 있었다. 당대의 제반 개인주의 비판 앞에서, 최재희는 인간 주체성과 개인 주체성에 관한 자신의 논의를 발전시켜야 했고, 실제 자신의 직업적 소양에 힘입어 그렇게 했다.
 최재희는 자연과 사회 등 자기 자신 이외의 것들로부터 독립해, 그것들에 대해서 자주적으로 사고하고 자기의 목적에 따라 행위하면서, 대상들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개조・창조할 수 있는 주체로 인간과 개인을 규정했다. 이에 기초해, 그는 개인 중심의 국가론과 민족론, 나아가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한편, 유기체주의와 공리주의에 기초한 공산주의와 전체주의, 심지어 민족주의 등 당대 주요 이데올로기들을 비판하였다. 바로 이것이 최재희의 ‘개인’이 가진 당대 이데올로기성이자 정치성이었다. 또한 그의 개인주의는 해방 직후 근대 사회・국가 건설과 발전의 주체를, 그것도 국가・사회적 의제에 능동적으로 복무하는 자기 규율적 인간형을 생산하고자 한 문제의식의 소산이자, 그를 위한 담론적 노력이었다.
 그런데 최재희의 개인 담론은 자기 모순을 노정하고 있었다. 그의 개인주의는 원래의 해방적, 민족주의적 문제의식과는 상충되게도, 아시아-태평양 전쟁 이후 동아시아와 남한에서의 헤게모니 변동을 촉진하고, 이 과정에서 서구가, 또 서구 근대 문화가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