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쁜 것? - 박찬욱의 ‘복수 연작’의 주체성에 관한 정신분석적 접근
Is It Truly Bad to Revenge? : A Psychoanalytic Approach to Subjectivity in the Series of Vengeance by Park, Chan Uk
- 발행
- 2006 등록이 논문은 발행 시점을 확인하지 못해 원문 등록일을 적었습니다. KCI가 2005~2008년에 옛 논문을 몰아서 올린 탓에, 그 시기 등록분은 발행보다 평균 3~5년 늦습니다. 실제 발행연도는 더 이를 수 있습니다.
- 소속·발행
- 도서출판 시각과 언어
- 출처
- 국내 KCI
- UCI
- G704+INS000000225-ART001203638
-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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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초록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박찬욱의 영화들은 점점 더 리얼리티에 대한 참조를 벗어나 추상화, 양식화되어왔으며 이를 위해 가동된 장르적 상상력은 실재의 침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참혹한 사태를 적나라하게 전시하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기능해왔다. 그의 영화가 적어도 실재를 드러낸 다음 다시 상징화하는 여타 장르 영화들의 길을 따르지 않고 현실을 지탱해온 환상의 구조를 노출하는 데 충실하다는 사실은 그의 영화들을 라캉주의적 윤리의 지평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라캉주의는 여기서 다시 성구분공식을 끌어들여, 실재의 상연이 남성편의 논리로 이루어지는지, 여성편의 논리로 이루어지는지를 한번 더 따져본다. 새로운 상징적 질서의 수립을 꾀하는 ‘행위’의 주체는 오직 여성-주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찬욱의 복수 연작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은 과연 어떤 주체인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 보이>는 복수를 통해 죄와 벌의 악무한을 가동시키는 ‘구조’의 전능함에 대한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의 복수는 세계를 ‘보편성’ 및 그 보편성의 한계를 구성하는 ‘예외’로 이루어져 있는 닫힌 집합으로 간주하는 남성편의 논리와 동일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요컨대 유괴범 류에 대한 동진의 복수, 장기밀매단에 대한 류의 복수는 스스로 상징적 질서를 이탈하여 도덕적 실패(복수)를 결행함으로써 상징계의 처벌을 유도하여 궁극적으로는 상징적 질서를 강화하려는 예외적 복수의 행동이고, 반면 동진에 대한 류의 복수 및 혁명적 무정부주의 동맹 회원들의 복수는 그러한 도덕적 마조히스트에 대한 상징적 처벌로서 보편적 복수의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이우진의 복수가 상징적 질서와의 관계에서 마조히즘적이라면 오대수의 복수는 이우진의 일탈에 가하는 타자 혹은 사회의 처벌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논리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누나나 애인, 딸을 욕망의 예외적인 대상-원인으로 삼고 그 상실감을 복수의 연쇄를 통해 상쇄하려 하지만 끝내 복수의 악무한, 욕망의 악무한을 헤어나올 수 없는 욕망의 주체, 상호주관적 주체라는 점에서 상징적 틀 자체를 재정식화하는 계기를 창출할 수는 없는 주체들이다. 그렇다면 복수연작의 완결편으로 알려졌던 <친절한 금자씨>는 우리에게 욕망의 악무한을 넘어 충동의 무한으로 나아가는, 실재의 예외적 지위를 철폐함으로써 세계를 열린 집합으로서의 비-전체로 만드는 여성-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