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도쿠가와 일본의 정치적 아이덴티티: 『赤穗事件』에 나타난 武士-庶民의 정치적 아이덴티티와 주체성을 중심으로
The Political Identity of Tokugawa Japan: On the Political Identity and Subjectivity of Samurai and the People in Akou Event
- 발행
- 2008 등록이 논문은 발행 시점을 확인하지 못해 원문 등록일을 적었습니다. KCI가 2005~2008년에 옛 논문을 몰아서 올린 탓에, 그 시기 등록분은 발행보다 평균 3~5년 늦습니다. 실제 발행연도는 더 이를 수 있습니다.
- 소속·발행
- 충북대학교
- 출처
- 국내 KCI
- UCI
- G704+INS000000834-ART000926486
-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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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키워드
赤穗사건, 정치적 아이덴티티, 도쿠가와 일본, 무사도, 일본정치사상
초록
이 논문은 「赤穗事件」(1701-1703)을 통해,
 근세 일본의 정치적 아이덴티티와 정치체제의 모순,
 정치주체의 윤리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 사건은
 赤穗藩主淺野長矩가 막부의 고관 吉良義央을 살해
 하려다 처형된 뒤, 淺野의 가신 46인이 吉良를 살해
 한 복수극이다. 그러나 그것은 私的폭력을 엄금했
 던 막부의 법에 위배되어, 46인은 切腹刑에 처해졌
 다. 이에 대해 주자학자와 서민들은 무사들의 행위
 를 열렬히 옹호했다. 그러나 저명한 유학자 荻生徠
 는 무사들의 脫法을 비판하고 막부의 체제원리를 옹
 호했다. 그는 또한 주군의 행위가 부당한데도 주군
 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은「不義」이며, 한 藩
 의「私論」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사도의 본질은
 ‘正邪’의 판단보다는‘충성’에 있으며, 무사의 정치
 적 아이덴티티는 일본 전체보다는 藩에 속해 있었다.
 즉, 赤穗무사들의 비극은 법과 윤리, 幕藩制의 모순
 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赤穗무사들의 관습적 정치
 적∙윤리적 아이덴티티는‘충성’에만 머물러있어,
 자신들의 행동이 지닌 복합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
 다. 그 때문에 그들은 막번제의 모순을 비판하기보
 다, 이 사건을 주군 淺野와 吉良의 개인적인 원한문
 제로 환치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것은 결
 국 죄의 유무가 불분명한 吉良를 희생시켜, 막부의
 정치적 문제를 은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요컨대
 성찰이 결여된 이들의 윤리적 행위는 결과적으로 비
 윤리적 행위이자, 정치를 개인화시키는 탈정치적 행위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