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여진 정벌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북정록 』의 편찬과 내용 분석‒
A Study of Propaganda in the Bukjeongrok : The Early Joseon Dynasty’s Conquest of the Jurch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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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발행
- 강원대학교
- 출처
- 국내 KCI
- DOI
- 10.22888/mcsa..35.20230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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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키워드
조선, 여진, 정벌, 『북정록』, 프로파간다, Joseon, Jurchen, Conquest, Bukjeongrok, Propaganda
초록
본고는 『북정록 』 편찬의 이면에 있는 정치적 함의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적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조선은 1460년(세조 6) 두만강 유역에 있는 모련위에 대한 정벌을 실시하였고, 1461년에 이와 관련한 기록을 편찬하였는데, 이 책이 『북정록 』이다. 『북정록 』은 조선전기 여진 정벌 기록 중 편찬 과정과 간행이 확인된 유일한 관찬 기록이다.
 『북정록 』은 총 6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진 정벌 그 자체보다는 정벌 배경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명은 조선과 여진이 불화하자, 양자가 화해하도록 지시하였지만, 조선은 여진인들의 행위를 背恩으로 규정하였고, 이들에 대한 정벌은 명의 지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묻는 것으로 포장하였다. 따라서 『북정록 』의 편찬과 내용은 정벌 자체의 과정보다는 이 경과를 자세히 써 놓아 정벌의 명분과 정당성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었다.
 세조는 조선의 여진 정벌 직후부터 『북정록 』의 편찬을 지시하였고, 총 4차례에 걸쳐 28명 이상의 대신들과 관료들이 참여한 교정을 하였으며, 이후 『북정록 』이 인쇄되었다. 결국 여진 정벌 직후 7개월 후에 『북정록 』이 간행되었으며, 간행에 쓰인 활자는 1455년(단종 3)에 만들어진 ‘乙亥字’였다. 현재 남아있는 『북정록 』은 ‘을해자’로 찍은 유일본이며, 여러 藏書印을 통해 개국공신인 의령남씨 남재의 후손에게 배부되었다가, 남구만과 남학명 부자의 집안에 소장된 후, 일제강점기에 이인영, 해방 후에 이병직과 최현배의 손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또 『북정록 』은 조선후기 ‘校書館印書體字’로 재간행되었으며,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북정록 』이 가지는 성격, 즉 세조대 여진 정벌의 명분과 정당성을 알리는 프로파간다적 성격에 충실하였던 결과였으며, 이 성격이 지속된 것을 말해준다. 『북정록 』은 실록 사초와 여러 문적을 상고하여 편찬된 것이지만 당대에 편찬된 1차 사료의 성격을 가지며, 일부 내용은 『세조실록』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북정록 』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북정록 』의 내용은 당시 조선과 명・여진과의 관계를 보다 자세히 알려주는 사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