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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전략으로 본 원수정기 로마의 반(反) 파르티아 프로파간다

Rome’s Anti-Parthian Propaganda as a Military Strategy under the Principate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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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발행
육군사관학교
출처
국내 KCI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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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키워드

군사전략, 로마의 동부 속주, 반(反) 파르티아 프로파간다, 파르티아식 활쏘기, 아르 메니아, 로마인 알렉산드로스, 그리스계 엘리트층, Military Strategy, Roman East, Anti-Parthian propaganda, Parthian Shot, Armenia, Roman Alexander, Greek elites

초록

이 논문은 원수정기 로마에 동부 속주를 대상으로 한 군사전략 목적의 반(反) 파르티아 프로파간다가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수행되었는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로마와 파르티아의 관계사를 살펴봤을 때, 파르티아가 로마에 침략 의도를 드러낸 경우는 극히 드물었던 반면, 로마는 일관되게 파르티아를 침공했고 주로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했다. 파르티아를 상대로 한 로마의 방위전략 또는 공세전략은 동부 속주 인민들의 단합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마는 과거 그리스인들이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던 전승을 공유하고 있는 모든 지역에서 동방으로부터의 위협이라는 인식을 길러낼 수 있었다. 따라서 로마의 역사서술은 “파르티아식 활쏘기(Parthian shot)”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로마의 황제들은 반 파르티아 프로파간다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파르티아와 아르메니아에서 방문한 인사들이 마치 속국에서 온 것처럼 비춰지도록 연출했다. 그리고 황제의 승인 없이는 아르사케스조 출신 아르메니아 왕이 나오지 못하도록 통제했는데, 티리다테스 1세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66년 네로에게서 왕관을 받기 위해 로마를 방문했는데, 그의 행렬은 동부 속주의 주요 도시들을 거쳐 안티오키아까지 육로로 이동하도록 치밀하게 기획되었다. 한편, 로마 황제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사업적을 모방하거나 넘어서려고 했다. 이는 동부 속주의 다양한 민족들을 규합하고 로마군의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의 일환이었다. 파르티아나 페르시아로 대표되는 동방의 위협에 맞서는 ‘로마인 알렉산드로스’의 이미지는 그리스계 지배층들에게 꽤 효과적이었는데, 그들이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면서도 자신들의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로마는 동방에서의 군사전략을 정당화하는 데 반 파르티아 프로파간다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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