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프로파간다: '구원자' 신화의 탄생
Napoleonic Propaganda: Making of ‘Saviour’ Myth
- 발행
- 2021 등록KCI API에는 발행일 항목이 없어 원문 등록일을 쓰고 있습니다. 실측으로 발행보다 최대 6년 늦습니다 — 재수집하면 발행연월로 바뀝니다.
- 소속·발행
- 전북대학교
- 출처
- 국내 KCI
- DOI
- 10.51786/RCHF.2021.02.44.209
- 원문
- 원문 보기 ↗
개념
키워드
나폴레옹 프로파간다, 구원자 신화, 이탈리아원정, 이집트원정, 로디 전투, 피라미드 전투, Napoleonic Propaganda, Myth of the Saviour, Italian Campaign, Egyptian Campaign, Battle of Lodi, Battle of the Pyramids
초록
1796년 이탈리아원정에서 불세출의 전쟁영웅으로 등장한 나폴레옹은 불과 3년여 남짓 후에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권좌에 올랐다. 나폴레옹이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적군의 연파한 그의 혁혁한 전공 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치적을 장식하고 선전하는 그의 탁월한 프로파간다 전술 덕이기도 할 것이다. 이탈리아원정에 뒤이어 이집트원정에 나선 원정군 총사령관은 총재정부에 보내는 군보고서들뿐만 아니라 자가가 직접 만든 군대 신문들, 여러 정치언론들을 통해 원정군의 치적을 과시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선전을 펼쳤다. 판화와 회화, 메달과 훈장도 ‘국민 영웅’의 이미지메이킹에 한몫을 했다. 언론과 여론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은 무능하고 부패한 총재정부 정치인들과는 대조되는,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젊고 청렴한 공화파 장군의 이미지였다. 병사들을 이집트 땅에 남긴 채 나폴레옹은 도망치듯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국민 대중은 그를 위기에 처한 조국의 ‘구원자’로 열열이 환영했다. 나폴레옹은 실로 현대식 정치프로파간다 와 이미지메이킹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