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 남북한 만화삐라의 프로파간다 성격비교
The Propaganda’s Characteristic Comparison of South and North Korean Cartoon Bill during th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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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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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키워드
프로파간다, 만화 삐라, 한국전쟁, propaganda, comic propaganda bill, Korean war
초록
이십 세기는 프로파간다의 시대였다. 파시즘이든 공산주의든, 심지어 자유주의 진영에서조차도 지배 권력이나 이념을 미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프로파간다를 이용했다. 과장된 구호를 프로파간다 기법으로 현실감 있게 극대화시키기 위해 지배자들은 예술가들을 동원하였지만 영웅적인 캐릭터로 과장된 비현실적인 묘사는오히려 설득력이 부족한 그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전쟁기에도 여전히 프로파간다는 남북한 이념대결의선봉장이었다. 뛰어난 예술가들은 냉전적 사고방식을 주입받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새로운 프로파간다 선전원들로 변해 갔다. 한국전쟁기의 프로파간다는 만화삐라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만화삐라는 남북한 모두 상부의 엄격한 지시와 통제를 받으며 제작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표현방법의 차이가 있었고 만화매체를 활용하는 남북한의 태도에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남한의 만화삐라는 만화가의 재치나 유머, 은유 등의 예술적 표현력을 최대한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간 반면, 북한은 당의 지시를 정확히 그려내는 것 이외에 다른 만화의 역할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인식 차이 때문에 남한에서는 만화삐라를 통해 선전효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기가 전후(戰後)의 만화산업이 발전하는 기반으로 작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기의 만화삐라는 남한에게는 아주 유용한 프로파간다 매체가 되었고, 북한에게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역할이 다소 부족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는 집체 선전화 분야가 더 발달하며 만화는 어린이용 정도로 역할이 축소된 반면, 남한에서는오락만화의 전통이 성장하며 웹툰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발전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연구에서는 남북한의 만화문화 형성에 큰 차이를 가져온 한국전쟁기 만화삐라의 특성을 비교 분석하여 남북한이 한국전쟁기에서프로파간다 매체를 어떻게 활용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 보고자 한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은 더 우월한 사회체제라는 것이 예술가들에게 프로파간다 제작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사회가 아니라 더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