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창궐과 유대인 학살(pogrom): 1348~51년 유대인 음모론과 사회적 대응
Jewish Poison Conspiracy and its Responses during the Black Death in 13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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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발행
- 성균관대학교
- 출처
- 국내 KCI
- DOI
- 10.21591/jwmh.2021.47.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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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키워드
흑사병, 유대인 학살, 독극물 음모론, 반유대 정서, 희생양, 교황칙령 「유대인으로서」, Black Death, Pogrom, Poison Conspiracy, Anti-Semitism, Scapegoat, Papal Bull Sicut Judaeis
초록
14세기 중반(본 논문은 신성로마제국의 경우에 집중하지만) 서유럽 사회는 흑사병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에 직면했다. 사회는 공포와 불안에 휩싸였고, 이는 유대인이 기독교도를 살해하기 위해 우물에 독을 푼다는 독극물 음모론의 생산과 유통으로 이어졌다. 이 음모론은 유대인 대량 학살의 명분을 제공했다. 음모론은 실재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대인이 자백을 통해 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 아래에서 사회 구성원은 소수자를 타자로 만들고 희생양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는 뒤르켐과 지라르의 일반론적 입장을 적용할 수 있다. 셋째, 종교·심성적인 면에서 기독교 사회에 내재화되어 있던 반유대인 정서 역시 유대인의 음모론이 실재한다고 믿게 했다. 음모론 및 유대인을 대하는 태도는 계급(층)에 따라 달랐다. 각자의 이해관계 및 입장에 따른 것이었다. 민중 계급은 종교·심성적 맥락과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다. 도시 엘리트 계급은 경제·사회적 이유에서 유대인을 보호하고자 했다. 교회 당국은 교리적 전통에 따라 유대인을 보호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과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